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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나의 힘

오지랖 자제 좀...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영 에세이

by 유준의 생존기 2022. 6. 1.

박상영 작가는 요즘 핫한 소설가인데, 독보적인 개성을 가지고 퀴어 소설을 잘 쓰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는 2016년에 문학동네 신인상을 탔고,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소설책을 냈으며, 강연이나 북토크를 통한 소통으로 젊은 작가로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출처: 교보문고

이 트렌디한 박상영 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에세이를 많이 읽는 아는 형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책인데, 확실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장르지만 잘 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잘 쓴 에세이와 잘 못 쓴 에세이를 구분할 능력은 부족하지만, 이 에세이는 확실히 잘 쓴 것 같은 느낌이다.

우선 작가의 솔직한 마음이 자세하게 드러나있다. 어떤 부분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써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p33

이 때문에 팀장이 말을 걸면 고개를 끄덕여주기는 하며, 노골적으로 무시하지는 않는다. 워낙에 다른 사람들이 대놓고 팀장을 개밥그릇 취급하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 일종의 지지가 되어버린 것 같다.

 

작가는 이미 퇴사를 한 잘나가는 작가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씀으로서, 나같은 월급쟁이 독자에게 통쾌함과 공감을 선사해주었다. 박상영 작가의 그 용기에 감탄했다.

 

에세이의 전반부는 저자의 회사생활부터 퇴사 때까지, 후반부는 퇴사 후 작가로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것은 제목에서 추리할 수 있듯이 이다. 박상영 작가가 살이 좀 찐 편이어서 그것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이 나오고, 마무리는 대부분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다짐으로 끝난다. 하지만 좋은 에세이는 솔직하고 자세한 감정 묘사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회적인 주제로 발전시킨다.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타인의 외모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39p
“살 빼시고 관리 좀 하시면 인기 많으실 거 같은데요? 대리님 긁지 않은 복권 같아요!”

A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지 점심을 먹으러 나가버렸고, 남겨진 나는 여러모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가 뭔데 내 외모를 평가해. 살찐 사람 몸은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해도 되는건가. 게다가 긁지 않은 복권이라니. 상대방은 누구보다도 절실히 자신의 현실을 살아가는 중인데 타인이 왜 함부로 그 사람을 무엇이 되지 못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인가...
약자에게 유달리 가혹하고도 엄격한 한국 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만인은 직간접적으로 매일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폭력적인 시선에 노출된 처지인 것이다.

 

 참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우리 사회는 외모에 대한 오지랖이 지독히도 넓어서 누가 좀 뚱뚱(또는 통통)하면 자기가 뭐 의사나 건강전도사라도 되는 양 살을 빼라 마라, 살을 빼면 예쁠텐데 왜 안빼냐, 걱정이나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소고기나 한 점 사주고 그런 말을 하면 진짜 밉지도 않다. 진짜 다이어트 약 살 돈 보태줄 거 아니면 그런 소리는 안하는 게 좋다.

 

 나는 정상체중이라 오늘 밤에 굶고 잘 생각은 없지만, 어릴적 겪었던 병으로 인해 머리숱이 얇고 적은 편이다. 일하는데 아무 지장없지만 몇몇 직장 상사가 오다가다 한마디씩 꼭 한다. 정말 재밌는 사실은 내 머리숱에 대해 나보다 어리거나 내 또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 상사는 조용히 불러서 조심스러운 말투로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치료받아보라고 한다. 그래도 이건 그나마 나은 경우에 속한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50대 이상의 상사들은 대놓고 아니면 가는 길에 굳이 나를 쫓아와서 젊은데 왜 이렇게 머리숱이 없냐고 물어보기 일쑤다. 그들은 선의나 우려일지 몰라도 당사자는 기분이 좋지 않다, 나쁘다

 

 가장 불쾌한 것은 아무래도 맨 마지막의 케이스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나 회식자리에서도 그들의 개념 없음은 거침이 없다. 그런 질문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주로 받았는데, 회사 수준의 문제인지 아니면 나이많은 직원이 많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그런 질문에 이제 좀 적응이 될 것 같지만 훅 들어오는 그들의 무례함에 나는 깜짝깜짝 놀란다.

 

이런 애로사항 때문에 비만인의 에세이인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가 더 공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p204
회사 생활과 글쓰기는 마치 세트상품 같은 일이었다는 것을.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회사 생활의 다른 모든 업무와 다를 바 없는 ‘노동’이지만 실은 나는 글쓰기를 통해 일종의 ‘존재 증명’을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박상영 작가는 직장과 그곳의 동료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여주는데, 결국 작가라는 꿈을 이루며 퇴사한다. 이 부분이 참 부러웠다. 나도 파이어족이 되어 퇴사를 꿈꾸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글을 쓰는 것이 취미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박상영 작가는 내 롤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막상 꿈을 이루고나면 허탈하고, ‘꿈을 향해 달릴 때가 행복했었지하고 회상할 수 있다.

p257
생이라는 명제 앞에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바위를 짊어진 시시포스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꿈과 목표를, 희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

 

 실제로 박상영 작가는 그런 증후군(?)을 겪지만,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걸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약간 개성적인 모습이 있어서 오지랖이 넒은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게 쉽지 않아보인다. 그럼에도 자기를 잃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재밌는 작품을 써주기를 희망하고 응원한다.

출처: 교보문고

https://brunch.co.kr/magazine/ihaveto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