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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나의 힘

버스기사님이 무뚝뚝한 이유, 허혁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by 유준의 생존기 2022. 5. 16.

 책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막상 쓰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소설같은 경우는 재밌고 개연성도 있어야하고요, 시는 독자들에게 최소한의 울림과 공감을 주어야합니다. 비문학 관련 책을 쓰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관련 분야에 대해 그래도 최소한 독자들보다 더 알아야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통찰력을 보여주어야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일반인은 책을 영원히 못쓰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에세이입니다. 에세이도 종류가 많기는 하지만 정해진 형식과 스타일이 없어서, 자기의 경험과 생각을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장르보다 쓰기에 무난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에세이는 정말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예전에 모 힙합가수가 에세이를 서점에서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글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에세이라는 장르에서는 글이 딱히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도 그렇습니다. 말 그대로 에세이는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이라서요. 아무튼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에세이를 최근에 저는 좀 읽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읽은 책은 일종의 직업에세이로 허현 작가님이 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라는 책입니다. 지금은 절판이 된 책인데요.

 

예상하시겠지만 전북 전주시에서 버스기사로 일하시는 분이 자기 직업에 대해 쓰셨습니다. 직업에세이는 우리가 몰랐던 직업의 애환과 즐거움이 에피소드와 잘 어우러져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내버스는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대중교통이고, 버스기사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지만 딱히 대화를 나눌 일은 없습니다. 소통이 없다는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고, 단절된 관계인데요. 이 책을 통해 버스기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책이 나온 2018년도 당시에 전주시 버스기사님들은 하루 18시간 근무를 하는 격일제 근무였습니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밤 12시까지 운전을 하고, 그 다음날은 휴일입니다. 격일제 근무지만 하루에 18시간 일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힘든 일입니다. 작년엔가 서울의 어떤 시내버스 노선이 길고 길이 막혀서 기사님이 한 번 운전대를 잡으면 거의 3시간을 운전하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화장실도 못가고 운전석에 앉아 꼼짝 못한 채로 운전에만 집중하는 기사님의 고생이 인터뷰를 통해 잘 느껴졌습니다. 

이 책에서도 승객들은 잘 모르는 기사님의 애환이 잘 드러나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끔씩 버스를 탈 때 '이 버스 OO가요?'라고 기사님한테 물어볼때가 있는데, 기사님이 세상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해서 무안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냥 행선지를 물었을 뿐인데 왜 저렇게 퉁명스러우실까 생각했었는데요. 이 책에서는 저렇게 행선지를 묻는 손님이 굉장히 많고 고된 운전으로 피곤하기 때문인 이유라 설명되어 있습니다. 저라도 하루 18시간, 매너없는 운전자들 사이에서 신경을 곤두세운채로 운전을 하면 대답이 예쁘게 안 나갈것 같긴 합니다. 미소의 서비스를 기사님이 행사할 의무도 없고요. 

 

하지만 이 책은 버스기사의 입장에서 쓴 책입니다. 그래서 승객으로서의 독자 입장에서 읽어보면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래 내용은 저자가 생각하는 매너 승차에 관한 내용인데, 흥미로워서 올립니다. 

P138. 윤리적 버스승차
1. 승강장 인도 밑으로 내려오지 말고 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버스로 달려들지 말 것
2. 자신이 탈 버스가 오면 가만히 서있지 말고 손을 가볍게 들 것
3. 젊은 당신이 노약자와 같이 버스에 오를 때 맨 나중에 탈 것
4 수고한다는 인사는 마음이나 손으로 할 것(수고한다는 승객 중 절반이 진상이다. 특히 수고한다며 바로 기사 뒤에 앉는 인간은 백퍼센트 진상이다.)
5. 버스가 막 출발하는데 뛰어와 타려는 경우 버스가 그냥 가버린다고 해도 서운해 말 것
6. 버스에 올라타면서 구시렁구시렁하지 말것

하나의 직업에 하나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버스기사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다음에 버스를 타면 왠지 버스기사님한테 말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사님은 물론 별로 안 좋아하시겠지만요.